"반갑습니다. OO입니다. 서로 윈윈하는 사이가 됩시다" 하면 왠지 상업적 거래의 냄새가 난다. 내가 너를 만난 목적은 너를 통해 무언가 이익을 얻기 위함이다라는 속내를 감추고 잘 지내보자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함께 진화합시다라고 한다면 그보다 더 고차원의 의미가 된다. 상대를 통해 그저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발전시켜 나가자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 공진화에 대한 좋은 칼럼이 있어 소개한다.
<원문기사 : 경향신문 - 과학의 한귀퉁이, 김홍표> 2018.12.25
과학의 한귀퉁이]햇반과 과일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오늘 아침 나는 90g의 쌀에 적당량의 물과 불을 가해 이빨과 턱의 부담을 한껏 줄일 수 있게 조리된 한 공기의 밥을 먹었다. 얼추 210g에 해당하는 양이다. 그 뒤 입가심으로 사과 두어 쪽을 먹었다. 배안에서 소화 과정을 거친 쌀이 되살아나 싹을 틔울 가망은 전혀 없겠지만 사과의 씨앗은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 사과는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 달고 상큼한 과일에 투자하는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대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디 ‘과일이 의도하는 바’를 가볍게 무시하면서 재활용봉투에 담아 씨앗을 내버린다. 하지만 여전히 나무 위에서 과일을 따 먹었던 먼 과거 조상들의 행적을 잊지 않고 자주 과일 진열대로 모여든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과일은 그 크기와 형태 및 색깔이 제각각이다. 그러나 과일의 다양성이 어떻게 생기고 유지되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10년 플로리다 대학의 실비아 로마스콜로(Silvia Lomascolo) 박사는 씨앗을 퍼뜨리는 매개 동물에 의해 무화과(fig)의 다양성이 결정된다는 논문을 미국 과학원회보에 게재했다. 열대우림에 사는 약 90%의 나무는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숲속의 동물들에게 과일을 제공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에서도 과일을 맺는 나무를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잔설 뒤로 알알이 붉은 산수유와 아직도 가지에 매달려 있는 감나무 까치밥을 보자. 달고 영양가 높은 과일을 먹은 동물들은 변을 통해 기꺼이 씨앗을 널리 퍼뜨린다. 생태학자들이 공진화(co-evolution)라 칭하는 현상이다. 이는 자신의 씨를 전파하는 매개 동물이 좋아할 만한 몇 가지 특성을 과일이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박쥐가 씨앗을 퍼뜨리는 파푸아뉴기니의 무화과는 새들에게 의존하는 무화과에 비해 향기 나는 물질을 훨씬 더 많이 만들어낸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잠시 더 살펴보자. 후각도 시원찮은 데다 전반적으로 부리가 작고 이빨도 없지만, 새들은 매우 훌륭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빨강, 초록, 파랑의 세 가지 색을 혼합해 색상을 감지하는 삼색각(三色覺) 인간이나 아프리카 유인원보다 새들은 한 가지 색상을 더 구분하고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어떤 과일이 익었는지 판단하기 위해 새들이 시각을 선호할 것은 불 보듯이 뻔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일은 과연 어떤 성질을 지녀야 할까? 작고 부드러운 데다 붉거나 검은색으로 치장해 과일이 주변의 배경색에 비해 도드라져 보이면 좋을 것이다. 향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리라 짐작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랬다. 새처럼 날개를 가졌지만 이빨을 가진 포유류 박쥐는 과일을 조각내어 씹어 먹을 수 있다. 게다가 야행성이라 밤에만 활동한다. 시각 장치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대신 박쥐는 섬세한 후각을 발달시켰다. 따라서 박쥐가 선호하는 무화과는 상대적으로 크고 이파리와 구분되지 않게 초록색인 경우도 많으며 줄기가 아니라 나무 몸통에 열매가 달려 있다. 그러나 무화과는 잎이 가득한 가는 줄기에서 목표물을 잃기 십상인 박쥐를 배려한 듯 소량의 알코올이 든 강렬한 향기를 산들바람에 흘려보낸다.
중남미 신대륙 유인원을 조사한 생물학자들도 동물과 식물이 서로 영향을 끼친다는 이와 흡사한 사례를 발견했다. 이곳에 사는 원숭이들은 아프리카 구대륙 원숭이들과 달리 삼색각 눈을 진화시키지 못했다. 우리가 보는 세계를 그들은 무채색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따라서 남미에 사는 이들 원숭이가 색 대신 과일 향기로 그것이 먹기 좋게 익었음을 판단하리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약 1억3800만년 전 현재의 아프리카와 남미가 분리되고 난 뒤 아프리카 유인원들이 삼색각 시각을 진화시켰고 그 능력은 인간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은 가고 서라는 신호등을 구분하고 익지 않은 초록색 과일에 섣불리 손을 대지 않게 된 것이다.
일찍이 육상으로 진출한 식물의 조상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3억년 전 고생대 석탄기의 습지에서 씨를 발명했다. 그 뒤 약 5000만년 후에야 비로소 과일이 등장했다. 씨가 가뭄과 추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식물의 소극적 대응이었다면 과일은 씨를 더 멀리까지 퍼뜨리기 위한 보다 공격적이고 영토 확장적 전략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과일의 주된 전파자인 조류와 포유류가 정온성을 획득한 뒤 더 춥고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는 점도 그저 우연은 아닌 것이다. 자손에게 더 풍부한 영양소를 주어서 햇볕이 부족한 곳에서도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씨앗의 크기가 점차 커지는 방향으로 식물의 진화가 일어났다고 과학자들은 생각한다. 큰 씨를 만들기 위해서 나무는 더 커졌고 더 많은 에너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거운 씨앗은 바람이나 작은 곤충이 멀리 퍼뜨리기가 어려웠다. 바로 이때 식물은 과일을 발명해 덩치가 큰 동물들을 유혹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과일은 우리 인류의 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흔한 과일은 고사하고 210g짜리 햇반 하나도 없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던 한 젊은이의 죽음과 함께 우리는 또 안타까운 한 해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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