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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 에세이

글쓰는 방법 (글쓰기수업,책쓰기수업)

by 손정 2020. 2. 22.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째는 쓰고자하는 마음이 생겨야 한다. 어느 풍경을 보고 주제가 떠올라야 한다.

가령,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하다가 직원의 작은 친절에 기분이 좋아졌다면 이 작은 경험을 그냥 넘기지 않고 글을 써야 겠다고 마음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글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인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소재를 끌어 올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써주면 주제가 더 잘 드러날까 고민할 줄 알고, 마침내 소재를 가져와야 한다. 내 경험도 좋고 읽었던 책도 좋다.

셋째는 그렇게 가져온 소재의 분량을 늘릴 수 있어야 한다. 내 경험이 소재라면 묘사, 정의, 상황설명 등을 통해 살을 붙이는 능력이 필요하다.

칼럼 하나를 요약해보고 어떻게 소재를 동원하고 살을 붙였을지 생각해 본다.

해찰하는 하루, 손홍규 (해찰 : 딴 짓)

얼마 전 제주에 다녀와야 할 일이 있었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의 탑승 게이트에 도착하니 탑승까지 시간이 조금 있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단체로 여행을 떠나는지 대기실은 빈자리 하나 없었다. 이윽고 탑승 시간이 되어 선생님으로 보이는 인솔자들이 웃고 떠들고 셀카를 찍느라 바쁜 학생들을 불러 모아 줄을 세웠다. 나는 그 줄 맨 뒤에 붙어 섰다.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또 한 무리가 내 뒤로 줄을 서는 바람에 나는 꼼짝없이 학생들 틈바구니에 끼인 셈이 되었다. 아이들을 단속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와 그 목소리에 화답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둘러싸인 셈이기도 했다. 그래서였다. 이즈음의 내가 결코 들어본 적 없는 어떤 목소리가 떠올랐던 것은.

나는 고향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는 걸어서 한 시간쯤 되는 곳이었고 중학교도 한 시간 반쯤은 족히 걸리는 곳이었다. 아침마다 정신이 없었다. 가방에 그날의 교과서며 공책이 제대로 들었는지 그 밖의 준비물을 빠트리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했다.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어머니가 차려 준 밥을 먹고 가방을 메고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 밖을 나설 때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당부를 챙겨 들어야 비로소 등굣길이 시작되었다.

해찰하지 말고 싸게 댕겨오거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어머니가 내게 일러주었던 말은 해찰하지 말라는 거였다.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어머니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부지게 대답도 했겠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그 말을 흘려듣고, 외려 그 말을 아직 저지르지 않은 잘못에 대한 꾸지람쯤으로 이해해 아예 마음 놓고 해찰해도 된다는 식으로까지 받아들이게 되었다. 등굣길에서야 해찰하지 말라는 당부가 없더라도 해찰할 겨를도 없었겠지만 하굣길이라면 사정이 달랐다.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내 기억 속에 선연한데 어차피 일찍 돌아가 봐야 적막한 집에서 딱히 누릴 만한 즐거운 일이 없었으므로 나는 마음껏 한눈을 팔면서 한 시간 거리의 길을 두어 시간 길이로 늘려 걷곤 했다. 용이 승천하면서 지붕에 구멍이 뚫렸다는 폐가를 서성이고 샛강을 건너고 탄가루를 날리며 달리는 연탄 배달 트럭과 양조장의 막걸리 배달 아저씨가 모는 삼륜차를 뒤쫓으면서 길을 걷고 달리되 길이 아닌 곳으로 하염없이 빠져들어 가야 했던 하굣길이야말로 지루한 학교생활에 대한 정당한 보상인 것 같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에야 어쩌면 내가 진정으로 즐겼던 건 해찰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어겼다는 데서 오는 은밀한 기쁨, 이처럼 해찰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왜 아직까지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지 걱정하며 일을 하다 말고 이마에 손그늘을 만들어 마을 초입의 신작로 쪽을 바라보고 있을 어머니를 떠올리는 기쁨이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 이제 누가 내게 해찰하지 말라고 변함없이 다정하게 일러줄 것인가. 이런 상념에서 벗어났을 때 나는 비행기 앞쪽 좌석에 앉아 있었고 학생들은 중간부터 뒤쪽까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승무원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이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윽고 비행기는 활주로에 들어서 속력을 높였다. 차분한 긴장의 시간이 잠깐 흐른 뒤 비행기가 중력을 거슬러 사뿐하게 광활한 하늘로 뛰어오르자 아이들이 깊은숨을 토하듯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듣는 이를 미소 짓게 하는 순결한 감탄들이었다. 아마도 그날 아침 집을 나서기 전에 부모로부터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라는 잔소리를 들었을 그 아이들도 언젠가 무엇 때문에 그 순간이 그토록 행복했는지를 헤아리는 때가 오겠지. 해찰하지 말라는 당부를 이제는 결코 들을 수 없게 된, 할 수 없게 된 많은 이들이 느닷없이 숨죽여 울 수도 있다는 걸, 내가 왜 그 사소한 그리움을 되새기며 이런 글을 써야만 하는지도.

이 글을 읽어보면 '참 별일도 아닌데 한 편의 글이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제주도 가는 길에 학생들을 보고 속으로 '너희들도 아침에 엄마한테 많은 당부와 잔소리를 듣고 왔겠지' 하고

생각하고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보태서 글을 썼다.

요약하면 이렇다.

 

 

이렇게 소재를 도출하고 상황설명, 묘사 등을 통해 살을 붙여 일정 분량이 되는 글을 쓸 수 있다.

글은 그냥 이렇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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