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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이야기

인재를 널리 등용한 제환공

by 손정 2015. 5. 26.

중국의 역사에서 주나라가 도읍을 처음 호경에서 동쪽의 낙양부근인 성주로 옮긴 BC770 부터

진시황제가 통일하기까지 BC221년을 서주시대라 부르고 그 이전을 동주시대라 부른다.

이 서주시대는 다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누는데 춘추시대는 공자가 엮은 역사책 춘추의

서술기간을 말하며 전국 시대는 한나라의 유향이 정리한 전국책의 서술기간을 말한다.

춘추시대에는 전체 혼란스러운 기간을 일시적으로나마 호령한 5명의 제후가 있었으니

이들을 춘추오패라고 한다.

춘추오패는 제나라 환공, 진나라 문공, 진나라 목공, 초나라 장왕, 오나라 합려를 가리킨다.

 

오늘은 춘추시대의 첫 번째 패자인 제환공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제환공의 열린 인사정책을 잘 설명해주는 고사성어가 정료지광이다.정료는 뜰에 횃불을

매달아 밝혀놓는다는 뜻이다. 제나라 국군의 자리에 오른후 제환공은 인재를 끌어 들이기

위해 자신의 집무실, 즉 궁전 뜰에 횃불을 환히 밝혀 놓고 24시간 개방했다.

인재라면 언제든지 찾아와라, 그러면 만나 주겠다는 의지를 만천하에 천명한 것이다.

덕분에 1년 동안 상당히 많은 인재를 발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자 인재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제나라 군주에 만족하지 않고 천하의 맹주가 되고 싶었던 제환공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한 노인이 찾아와 면담을 요청했다. 제환공은 노인에게

무슨 재주가 있냐고 물었다. 노인은 구구셈을 할 줄 안다고 대답했다. 제환공은 어이없어

하며 어린이도 능히 할 수 있는 재주가 무슨 재주냐며 따졌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주군께서 과감하게 인재를 등용하시고 1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인재가 찾아 오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내 재주를 가지고 주군께 봉사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주군의 눈높이가 너무 높은 까닭입니다. 이런 마당에

구구셈밖에 모르는 저를 발탁하시면 적어도 저보다 더 나은 인재들이 얼마든지

찾아올 것 아니겠습니까?"

깊이 깨달은 제환공은 그에게 자문역을 맡겼다.

 

출처 : 난세에 답하다,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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