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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 에세이

전화기 너머 엄마

by 손정 2018. 9. 9.

 

토요일 저녁, 엄마와 통화했다.

저녁식사로 칼국수를 해 드셨다는 말에 어릴적 엄마가 밀어서 만들어 주신 칼국수가 떠올랐다.

엄마는 외할아버지께서 감나무로  만들어 주신 밀대로, 넓은 포마이커상에다 국수를 밀었다.

처음부터 소금간을 하는 바지락 칼국수와는 달리 감자를 넣고 끓인 다음, 먹을 때 양념 간장으로

간을 했다.

칼국수는 대개 여름 저녁식사로 마당 한켠의 평상에서 먹었다.

평상 옆으로는 땔감으로 쌓아놓은 소나무 더미가 있었고 그 위로는 언제나 꼬두박이 넝쿨을

뻗고 있었다. 저녁식사는 꼬두박 꽃이 하얗게 피어나는 시간에 시작된다.

밤에 피는 꽃이라 더 잘 보이라고 그렇게 흰 빛이었나 싶다.

지금 생각하니 그 밤에 벌이나 나비가 어떻게 와서 수정을 했을까 싶기도 하다.

 

여름밤의 별미로는 칼국수 못지 않게 꼬두박 나물 볶음이 아직도 강력한 기억으로 자리한다.

멸치로 육수를 내고 얇게 썬 꼬두박에 붉은 고추, 다진 마늘 넣고 국간장으로 간해서

자작하게 졸여낸 꼬두박 나물.

비릿한 풀맛에 신축성있는 식감은 어느 음식도 대체 못할 그만의 특징이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에 포장육 돼지고기 두루치기보다 훨씬 더 폭신한 캐릭터가 꼬두박 나물이 아니던가.

 

엄마의 목소리는 늘 그 목소리였다.

자주 통화를 하면서도 못 느꼈던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건강하게 통화할 수 있음에 말이다.

내가 누구와 또 칼국수와 꼬두박 나물 얘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꼬두박 나물 이야기는 엄마와 해야 그 느낌이 제대로 전해지는 소재다.

전화기 너머 엄마가 거기 있다는 고마운 사실을 사십이 훌쩍 넘어가는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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